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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방송 기사

2016-05-01

종묘대제 - 머니투데이 방송


500년 잠든 혼백이 깨어났다…1년에 단 한번 '종묘대제' 가보니


2016-05-01 17:40


〔조선왕실 의례의 정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종묘대제' 1일 종로 일대서 봉행…3만여 명 참여〕


 

 

 






"와, 임금님이다! 저기 뒤에 앉아있는 사람은 세자네!"


1일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앞. 경찰의 통제에 비워진 4차선의 도로 위로 조선 시대 신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빨노파', 형형색색의 의복을 갖춰 입은 이들은 함께 행진하는 악사들이 연주하는 아리랑과 백도라지 등 우리 민요에 맞춰 씩씩하게 아스팔트 도로를 걸었다.


행렬 한가운데 위치한, '국왕'이라는 깃발 뒤로 10여 명의 신하가 붉은 가마 '어연(임금이 타는 가마)을 들고 행진을 했다. 가마 안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인 이원(54) 황사손이 타 있었다. 그는 고종의 5번째 아들인 의친왕의 손자다.


이날은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공동 주최하고 종묘대제 봉행위원회가 주관하는 2016년 '종묘대제'가 거행되는 날이었다. 종묘제례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종묘 정전과 영녕전에서 왕이 직접 거행하는 제사다.


왕실 제사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하기에 '종묘대제'라 부르는 이 행사는 매년 5월 첫째 주에 열리고 있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그 역사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선정됐으며, 각각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등재됐다.


행사는 이날 오전 10시 종묘 영녕전에서의 제향으로 시작됐다. 영녕전은 세종 때인 1421년 정종의 신주를 정전에 모시면서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자 확충하는 차원에서 새로이 건립한 별묘다. '왕실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이곳에는 문종·인종·단종 등이 모셔져 있다.




 


영녕전에서 제향이 이뤄지던 시간, 경복궁에서 출발한 왕가의 행렬은 종묘에 도착했다. 종묘에 도착한 이원 황사손은 정전에서의 종묘대제를 지낼 준비를 하기 위해 재궁으로 들어갔다.


종묘대제가 일반인에게 공개된 행사인 만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종묘를 찾은 관람객도 많았다. 일반 관람객들은 줄을 서서 대기한 끝에 정전 돌담 아래 미리 마련된 자리에 선착순으로 앉아 종묘대제를 관람했다.


어린 아들 둘과 함께 종묘대제를 관람하러 온 이모씨(36)는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조선 왕실의 가장 큰 행사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에 종묘를 찾았다"고 말했다. 일본인, 미국인 상당수의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제관들이 정해진 자리에 서는 '취위' 절차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제사가 시작됐다. 악사들이 북을 치며 중후하면서도 화려한 보태평과 정대업을 연주하자 8명씩 8줄로 대형을 맞춘 64명의 무용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줄지어 벌려 추는 춤'이라는 의미로 '일무(佾舞)'라 불리는 이 춤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의 한 분야다. 이들은 왼손에는 피리 '약'을, 오른손에는 깃털을 단 '적(翟)'을 들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재궁에서 나온 초헌관(신관례를 하고 첫째 잔을 신위전에 올리는 제관으로 보통 왕이 맡음, 올해는 이원 황사손)은 태조 이성계의 신주가 모셔진 1호실로 가 신주를 신탑에서 내어 모시고 향을 피워 태조의 혼령을 불렀다. 이후 바닥에 향이 좋은 술을 부어 지하에 있는 선조의 몸을 의미하는 '백'을 모셨다.


이후 신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바치는 의식이 시작됐다. 일반 가정의 제사와 다른 점은 익힌 고기가 아니라 '날것'을 사용한다는 점. 제사상에 오른 소, 양, 돼지의 생고기와 털·간 등을 태워보내며 동물의 기운을 혼백에게 바쳤다.


총 네 잔의 서로 다른 술을 올린 뒤 초헌관은 이 술을 음복해 조상이 주는 복을 받는 의식을 치렀다. 이후 네 번을 절하며 신을 보내드리고 신주를 다시 본래의 자리로 들여 모시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대제가 끝난 뒤 마지막 절차로 제례에 쓰인 폐백과 축문을 모두 태우고 묻는 의식이 거행됐다. 모든 예를 다했다는 의미에서 "예필"이라는 표현을 선언한 뒤, 초헌관은 재궁으로 돌아가고 참여한 인원들도 모두 퇴장했다.


이날 현장에서 해설을 담당한 최준식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종묘와 사직을 아울러 '종사'라고 불렀으며 종사가 국가의 운명을 상징한다고 여겼다"며 "종묘대제는 조선시대에 왕이 직접 주관한 최대 규모의 행사이자 종합 의례"라고 설명했다.



김유진 기자 yoo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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