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황실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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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han Imperial Household

환구단(圜丘壇)과 황궁우(皇穹宇)

<환구단 원형>

환구단과 황궁우는 천자라 주장한 중국이나 천황이라 주장한 일본 그리고 19세기 말 식민지 확보에 혈안이었던 서구열강들에 대한 고종광무태황제의 대내외적인 자주독립천명의지가 깃든 역사적인 성지입니다.

<1920년대 환구단 근처 >

1897년 10월12일 고종께서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시고 황제즉위식 거행 후 이를 천지에 고하기 위해 환구단에서 대제를 올렸습니다. 환구단에는 원래 중국사신이 머물던 남별궁(南別宮)이 있었는데 이곳에 황제국인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상징하는 환구단과 황궁우가 3층 원형제단 형태로 조성된 것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중국사대의 상징인 영은문(迎恩門)과 모화관(慕華館)을 헐고 1897년 같은 시기 그 위에 독립문(獨立門)을 세운 것처럼 조선이 제후국이었다는 공간적-역사적 치욕성이 고종황제에 의해 완전히 철거되고 청산된 것이었습니다(Cf. “1897년 고종이 황제즉위식과 제사 위해 옛 남별궁터에 환구단 조성,” 문화일보 2018년 02월21일).

<1890년 당시 헐리기 전 영은문. 영은문 사진은 알렌컬렉션 중의 하나로
2018년 황태자 이원 전하께서 알렌박사후손들로부터 환수 받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한 것입니다.>

<영은문이 헐리고 세워진 독립문>

<1930년대 황궁우에서 바라본 시청과 성공회대성당>

황궁우 내부는 통층(通層)으로 3층 각 면에 3개의 창을 냈고 천장에 팔조룡(八爪龍)조각을 새겼는데 이는 황제를 상징합니다. 황궁우 앞에는 광무7년(1902) 고종광무태황제 즉위40년을 기념하는 돌북(石鼓)을 세웠는데 이 돌북은 제천을 위한 악기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몸체에는 화려한 용무늬 즉 황제의 상징이 새겨졌습니다.

<환구단 돌북>

<환구단 석조대문. 호텔철근콘크리트건물에 둘러싸여 출입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환구단에는 하늘과 땅 그리고 별과 천지만물에 깃든 신위(神位)를 모시고 동지나 새해 첫날 제천의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러나 1912년 일본은 환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총독부철도호텔을 세웠습니다. 이 건물은 1968년 지금의 조선호텔(서울시 중구 소공동 106번지)로 대치됐습니다. 현재 황궁우와 3개의 돌북 그리고 석조대문만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에 의해 훼손-철거된 환구단 위에 들어선 총독부철도호텔>

<1920년대 조선호텔관광엽서. 중국사신을 섬기고 일본대신을 접대하는 조선의 모습이 도안되어
대한제국의 역사성을 훼손하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조선호텔 놀이터로 전락한 황궁우. 호텔 안에서 보이는 황궁우는 그저 작고 특이한 전각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이 황궁우를 바라보며 고기도 썰어먹고 커피도 마시며 샤워도 하고 잠도 잡니다. 2019년 2월18일자
조선일보 광고에는 더플라자호텔이 터 좋은 풍수지리콘셉트 웨딩상품을 선보였습니다.
호텔부지일대가 조선시대 외국사신 숙박장소 태평관이 있어 명당이라 했고 조선호텔은 환구단터로
고종 때 신에게 제사올린 길한 곳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환구단은 왜정시대도 아닌
21세기 대한민국 천민졸부재벌자본주의에 의해 여전히 그 역사적 숭고성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사진-Travel Bike News>

<별5개짜리 조선호텔의 부속 건물로 전락된 대한제국역사의 성지 황궁우는 1년 365일 호텔에서 비춰지는 뜨거운 조명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황궁우는 호텔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에게는 창문 밖 정원에 홀로 서있는 팔각정형태의 구경거리 전각일 뿐입니다.>

1960년대 해체되어 없어진 것으로 알려진 환구단 정문이 2007년 8월 강북구 우이동 옛 그린파크호텔 터에서 발견되어 2009년 12월 현재 위치에 복원됐습니다(Cf. “환구단 대문, 버스 차고지 출입구로 전락,” 동아일보 2007년 12월31일: “고종의 혼 서린 환구단 정문, 42년 만에 제 모습,” 조선일보 2009년 12월10일).

<우이동 그린파크호텔정문으로 사용되던 환구단 삼문은 2009년 제 자리에 복원됐습니다.>

환구단 바로 앞은 대한제국 영빈관 대관정(大觀亭) 터입니다. 고종황제께서 영빈관으로 쓰기 위해 1898년 미국선교사 호머 헐버트로부터 매입한 주택입니다. 2015년 9월 2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부영건설의 호텔건축신청을 통과시켰습니다. 일제 강점기도 아닌 21세기 2015년 재벌건설사가 신청한 호텔신축을 대한민국 문화재청이 허가하여 우리 모두의 소중한 대한제국의 문화유적성지가 한 순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문화재를 보호해야할 사명을 부여받은 문화재청이 저지른 일입니다. 결국 돈 때문이었습니다. 문화재청은 “사적 지정 시 땅 소유주인 부영에 지급해야할 토지보상금이 3000억 원”이라며 “완전한 원형 보존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라는 주장을 했습니다(Cf. “대한제국 영빈관 ‘大觀亭’유구 보존 논란,” 동아일보 2015-09-09). 보상금이 3000억이든 1조든 보상-보존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가 아닌지 반문해 봅니다.

<대관정 전경. 사진출처-안창모 교수>

<지하7층 지상27층 호텔이 한창 건설 중입니다. 지하7층을 파게 되면 용적률을 최대한 높여 신축하는 것이 됩니다.
역사문화유적공간에 이렇게 높은 고층 철근콘크리트호텔을 꼭 신축해야 될까요? 신축현장 가림 막에는 ‘문화도시 중구’하는
표어가 붙어있습니다. 중구가 표방하는 문화도시란 역사문화유적공간을 파괴하여 고층철근콘크리트빌딩을 짓는 것이라는
현실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지난 반세기동안 대한민국의 재벌이 남긴 유산은 ‘고수익 분양특혜 임대수익 창출’을 표방한
‘고층철근콘크리트빌딩문화화’였습니다. 이렇게 ‘천민졸부재벌자본주의문화’가 양산되고 만 것입니다. 여기에는 고귀한
사상이념철학이나 격조 있는 문화가 없고 오로지 천박한 물질만능주의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소유한 땅에서 문화유적이 발굴되면
고층철근콘크리트빌딩을 올릴 게 아니라 발굴된 역사유적을 원형 복원하여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미래꿈나무들을 위한
대국민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올곧이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게 맞지 않을까요? 도대체 재벌들의 욕심은 어디까지가 끝일까요?
너무 많은 돈을 벌어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뉴욕 맨해튼시민들이 평생 수돗물을 무료로 쓸 수 있도록 베푸는 모범을 실천한
록펠러 같은 사회사업가가 왜 대한민국 재벌 중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1956년 미국유학 직전 모친 의친왕비로부터 받은 당의와 화관을 입고 황궁우에서 고국에 작별을 고하는 해경왕녀. 사진출처-이해경, 『나의 아버지 의친왕』>

1908년 일제에 의해 금지된 환구대제가 2008년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 의해 100년 만에 복원됐습니다. 매년 10월 둘째 주 토요일 황태자 이원 전하께서는 환구대제 초헌관으로 봉행하고 계십니다. 고종광무태황제의 근대자주독립천명의지가 서려있는 환구단은 미래 꿈나무들이 역사적 자긍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루속히 원형대로 복원되어져야 하겠습니다.

<2017년 대한제국선포120주년기념 환구대제 및 황제즉위식 재현행사 초헌관 황제로 어가행렬 후 기자단인터뷰에 응하시는 황태자 이원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