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황실궁능 / 종묘 / 사직단 / 환구단 / 박물관
Daehan Imperial Household
- 왕실황실궁능 / 종묘 / 사직단 / 환구단 / 박물관
-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주미대한제국공사관-대조선주차미국화성돈공사관
(大朝鮮駐箚美國華盛頓公使館, The Old Korean Legation in Washington D.C.)
<재개관을 위해 한창 리모델링공사 중인 2017년 11월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외부모습.
황태자 이원 전하께서 알렌박사후손 방문 차 2017년 11월15일 잠시 들려 촬영한 사진입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또는 대조선주차미국화성돈공사관(大朝鮮駐箚美國華盛頓公使館)은 미국 워싱턴DC 북서부 로건 서클 15번지에 위치한 대한제국의 공사관입니다. 1891년 12월 1일 고종황제께서 자강외교확립을 위해 황실내탕금 이만오천달러($25,000)로 국외에서 처음으로 구입한 재외공관입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 모셔진 고종광무태황제[상]와 황태자[순종융희황제]의 어진[하].
박정양을 비롯한 공사관원들은 매월 초하루 보름 어진을 향해 망배의 예를 올렸습니다.>
1897년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꾼 후 <주미대한제국공사관>으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공사관 관리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일본은 대한제국의 자주외교권을 아예 소멸할 목적으로 1910년 6월 주미일본공사였던 우치다 야스야(內田康哉)가 공사관건물을 5달러에 매입하여 같은 해 9월 미국인 풀턴에게 십달러($10)에 매각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 8월 25일자 조선일보의 “일제가 판 대한제국 駐美공사관 10달러가 아닌 1만달러에 매각”이란 제목의 기사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십달러가 아닌 일만달러($10,000)에 매각됐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Cf. 김기철, “일제가 판 대한제국 駐美공사관 10달러가 아닌 1만달러에 매각” 조선일보 2012-08-25). 결국 우치다는 구천구백구십달러($9,990)의 시세차익을 챙겨 대한제국황실의 재산을 도둑질한 것이었습니다. 이 도둑질에는 공사관원이었던 이완용과 같은 친일역적매국노의 농간이 개입됐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대한제국의 국권침탈과 황실재산강탈이라는 슬픈 역사가 서려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고종황제의 손녀 해경왕녀와 윤기원 씨를 비롯한 재미교포들의 되찾기운동과 일본불법매각사기소송이 1999년 9월부터 전개됐는데 이도 결국 일본인도 아닌 대한민국문화재청에 의해 시세보다 3배 비싼 가격으로 2012년 8월 국민혈세가 투입돼 매입되면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2017년 11월15일 방문 당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 붙은 리모델링허가증.
한국문화재재단[Overseas Kore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으로 허가돼 있고
건물주의 이름은 2370 Massachusetts Avenue에 주소를 둔 권두연[Do Yeon Kwon]으로 돼 있습니다.>
<2017년 11월15일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리모델링공사현장 방문사진>
<공사관 방문 후 바로 옆 스미소니언박물관 수장고에 들려 알렌컬렉션 관람 후 박물관 관계자들과의 촬영사진>
해경왕녀께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찾기에 앞장서시고 일본정부상대소송의 원고가 된 이유는 건물의 원주인이 고종황제시고 그 직계손이 해경왕녀 자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재미교포들은 이민생활에서 어렵게 번 피 같은 돈을 십시일반 푼푼히 모아 <주미대한제국공사관>찾기에 고군분투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재미교포들에게 역사적 자부심을 고취할 수 있는 대한제국 자주독립외교의 중요한 성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윤기원을 비롯한 재미교포들은 뉴욕 조그만 아파트에서 생활하시는 해경왕녀를 공사관으로 모셔와 기거하게 하고 공사관을 교포후손들을 위한 역사교육현장으로 활용할 계획이었습니다.
<2018년 8월21일 공사관 재방문 당시 사진과 방명록에 서명하시는 황태자 이원 전하>
그러나 2012년 박근혜정부 당시 문화재청은 얄궂게도 교포들과 그 어떤 상의도 없이 시세보다 3배 비싼 가격으로 공사관건물을 매입하면서 이런 교포들의 소박한 소망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로 윤기원씨는 병이 났고 해경왕녀께서는 크게 상심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포들은 문화재청의 이런 악행에 크게 분노했습니다.
다음은 김영관교수가 2018년 7월4일 국회정책토론회 준비를 위해 작성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설치의 역사적 배경과 공사관 건물 매도-매입과정에 관한 보고서”내용입니다:
뜻 깊었던 대한제국공사관 개관식 마지막 황녀에 대한 결례 ‘옥의 티’
2018-05-28 (월)이종국 기자
22일 열린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개관식에서 독립유공자이자 초대 공관원이었던
월남 이상재 선생의 증손인 이상구 씨가 태극기 게양을 하고 있다. 야속하게도
간간이 비가 내렸다.
22일 오전 워싱턴 D.C.에서 열린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건물 개관식.
그래도 하객들의 얼굴에는 일제에 빼앗긴 공사관을 되찾은 기쁨이 늦봄의 화왕(花王)
모란보다 풍성하게 피어났다. 200명 가까운 하객 중에는 특별한 손님도 눈에 띄었다.
고종 황제의 손녀인 이해경 여사였다. 뜻 깊은 행사인 만큼 내빈도 많았다. 김종진
문화재청장, 천준호 공사, 랍 우달과 지미 고메즈 연방 하원의원, 정혜숙 DC 부시장,
마크 램버트 국무부 부차관보, 김영천 한인연합회장, 그리고 로건 서클 주민연합회장….
축사와 환영사는 길었다. 취재기자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평 한마디 새어나오지 않던
객석에서 나직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니, 이해경 여사 말씀이 왜 없지?”
아흔 노구를 이끌고 뉴욕에서 내려온 황녀에게는 끝내 마이크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해경 옹주는 고종황제의 아들로 순종 다음의 왕위 서열인 의친왕(義親王)의
다섯 번째 딸이다. 의친왕비가 자신의 호적에 그를 유일하게 올렸기 때문에
‘조선 황실의 유일한 공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여사는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1950년대에 미국 유학을 와
컬럼비아 대 동아시아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민족의 역사와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에 앞장서왔다.
그는 황실 복원을 추진하려는 일부 종친들에 “시대착오적 미몽”이라며 꾸짖을
정도로 합리적이고 현대적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대한제국 공사관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자강외교를 위해 귀한 내탕금을 내어
매입한 건물이었다. 113년 만에 태극기가 다시 걸리는 그 역사적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그는 하루 전 뉴욕에서 노구를 이끌고 먼 길을 출발했다.
이 여사의 감회는 남달랐다. 비가 내리자 그는 “고종 황제께서 비탄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 여사는 공사관을 되찾는데 앞장선
미주 한인들과 모국 정부에 감사의 뜻이라도 짧게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간곡한 요청을 주최 측인 문화재청에서는 거절했다.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본 한인들은 “주최 측의 역사인식의 부재와 결례가 지나쳤다”고 혀를 찼다.
그나마 테이프 커팅 순서에서는 이 여사에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공사관 내부 탐방을
끝내고 망국의 마지막 황녀는 뉴욕으로 발길을 돌렸다. 빗줄기는 더 세차졌다.
<이종국 기자>
<고종황제의 손녀 해경왕녀에 대한 문화재청의 결례에 관해 보도한 기사. 자료-한국일보 2018-05-28>
대한제국공사관 복원 유감
2018-10-22 (월)이내원 재미한국학교 자문이사
한미외교와 미주한인의 뿌리인 워싱턴의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이 굴욕적으로
수탈당한지 102년만인 2012년 우리의 품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는 6년에 걸친 지극한
정성과 복원 노력으로 2018년 5월 22일 재개관했다. 공사관은 산뜻한 옛 모습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다.
이 날은 조미통상조약 체결 136주년 기념일이기도 하였는데 마치 대미외교를 통한
국권 회복의 뜻을 끝내 이루지 못한 고종 황제의 비탄의 눈물인 양 궂은비를
흩뿌리고 있었다. 개관식은 공사관 바로 앞 써클 잔디밭의 가설 연단을 중심으로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행사를 지켜보면서 몇 가지 아쉬움을 지우기 힘들었다.
지난 20년간 재미 한국교육 지원운동을 해온 나는 공사관 3층 공간 활용에 관한
첫 번째 동포간담회를 마치고 한국학교 재미지도부와의 의견 조율을 거쳐
2013년 3월31일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의 효과적 활용방안 건의’라는 제목의
청원서를 정부관계 부처와 5개 한인회에 공시하는데 자문역할을 한 바 있다.
그 요지는 이 공사관 건물이 어디까지나 외교역사 유물로 강대국들의 식민지배
야욕과 가쓰라-태프트 밀약 같은 비이성적 탐욕외교의 희생물이었던 만큼 3층
공간을 외교역사 교육관으로 만들어 영구히 교육공간으로 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지 교육계의 간절한 열망을 깡그리 무시하고 우리의 새싹들이
배워갈 것이라고는 없는 속빈 전시공간을 꾸며낸 주무부서의 일방주의는 요즘 말로
재미 동포사회를 완전히 무시하는 관권 갑질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세 번에 걸친 동포간담 토론 설명회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요식행
위였던가?
또 하나, 개관식 의전의 비교육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오백년의 역사를
통해 정립된 우리 고유의 정신문화 가치체계를 거꾸로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뉴욕에 거주하는 고종황제의 손녀이자 의친왕의 딸인 해경 왕녀는 단하에 앉히고
공사관 당시 서열상 한참 아래였을 공사관원의 후손들은 단상 상석에 모셔졌다.
알려진 대로 영국과 일본은 살아있는 왕실을 문화 아이콘으로 만들어 자부심도
갖고 관광수입마저 알차게 올리고 있다. 몰락한 왕실도 엄연한 우리의 역사이며
뿌리인 것이다. 살아 있는 왕족을 경원하면서 경복궁을 한국 문화관광 1번지로
삼는 문화정책의 모순을 어떻게 합리화 할 것인지 궁금하다.
끝으로 초대 요인의 여행편의와 대우문제이다. 역사적인 건물이다 보니 공사관
개관 당시 주역 인물들의 후손들이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해경 왕녀와 초대공사
박정양의 증손녀 박혜선, 서기관 이상재의 증손 이상국, 서기관 장봉환의 증손
장한성 등 네 분이다.
해경왕녀를 전화 인터뷰해 보니 초대장을 우편으로 받고 보행이 불편한 고령임에도
뉴욕에서 내려오는 동포들의 SUV에 한자리를 얻어 타고 편도 6시간, 왕복
12시간을 다녀가셨다고 한다.
한국에서 온 후손들은 항공경비 지급과 여행의 편의를 제공받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해경왕녀는 미국 동포이기 때문일까, 응분의 대우를 받지 못하셨다는
안쓰러움이 앞선다.
3층 전시실의 한켠에 이제라도 한국의 특기인 컴팩트한 IT시청각(글, 음성, 사진)
설비를 추가하여 지방의 한국학교 학생들이 워싱턴에 들렸을 때 꼭 방문하여 이
공사관에 얽힌 외교역사를 정확하게 듣고 갈 수 있는 교육기능을 추가해 주시기를
기대한다.
정체성을 뚜렷하게 갖춘 차세대를 육성하며 미 주류 정계에 한국외교 지원세력을
양성하는 것이 뿌리교육의 역사적 소명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내원 재미한국학교 자문이사>
<해경왕녀에 대한 문화재청의 결례에 관해 발언한 미국현지교포 오피니언. 자료-시애틀한국일보 2018-10-22>
<참고자료>
◆1891년 12월01일 고종황제가 건물을 $25,000에 매입한 계약서.
◆1910년 06월29일 일본의 강압으로 $5에 매도한 계약서.
◆허위서명으로 추측되는 $5 계약서상의 고종황제, 민병석, 조민희 3인의 친필서명.
◆1910년 09월01일 구매등기 및 당시 주미일본대사 우찌다가 미국인에게 $10에 매도한 계약서.
◆문화재청에게 건물을 매도한 전 소유자 Timothy L. Jenkins가 $10에 구매한 등기부등본.
◆공사관건물의 Tax Value관련 서류.
◆윤기원과 Jenkins 간 주고받은 편지 및 e-mail.
◆1903년 촬영된 건물외관, 내부사진2종, 현재의 모습사진 합계4매(1903년 사진은 윤기원이 Historical Society of Washington D.C.에서 원본촬영).
◆건물역사에 대한 영문소개서(Towner부동산 전문지 발췌).
◆윤기원 작성 “한미양국 공통으로 중요한 역사를 간직하다” 제목의 설명서.
◆미국연방국회의원 17인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건물 되찾기 캠페인” 동참서명 및 명단.
◆연방국회의원 동참서명을 위한 설명서 등 기타자료.
◆2013.06.04 20:11:56. 국민신문고 접수내용.
◆연합뉴스. 김종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매입은 국민신탁 힘." 2012.08.22.
◆한국일보. “뜻 깊었던 대한제국공사관 개관식 마지막 황녀에 대한 결례 ‘옥의 티’.” 2018.05.28.
◆시애틀한국일보. “대한제국 공사관 복원 유감.” 2018.10.22.
Compiled & Written by
Dr. Young-Gwan Kim, Academic Dir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