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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이 주관한 제례는 정파를 초월한 통합의 도구

2021-03-22

[중앙선데이] 입력 2009.07.05 05:27 | 121호 22면

 

지난달 27일 새벽 스페인 세비야에서 낭보가 들려왔다. 유네스코(UNESCO)가 조선왕릉 40기 전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키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조선을 창업한 태조 고황제(이성계)의 기일이었다. 이날은 상서로운 날로 여겨 조선시대 국조오례의(다섯 가지 국가 의식) 가운데 길례(吉禮)를 지내는 날이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이원(47·사진) 총재는 이날 새벽 태조의 제사 준비를 하다가 소식을 들었다. 이 총재는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 건원릉(태조의 능)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조선 적통 이은 ‘황사손’ 이원씨


“너무나 감읍해 태조 고황제 제향을 지내면서 조상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거듭 올렸다. 이구 황세손의 상주로서 3년상을 치르고 지난해 10월 건원릉을 시작으로 지난달 25일 강원도 영월의 장릉(단종의 릉)까지 8개월간 봉심을 끝마쳤다. 그 이틀 뒤 낭보가 날아든 것이다. 정말 신비한 일 아닌가. 후손의 간절한 기도를 조상신들이 들어준 것 같다.”


봉심(奉審)은 왕세자 수업 중 하나로, 역대 왕의 무덤을 돌며 보존 상태를 살피는 것이다. 이 총재도 서울·경기·강원도에 흩어져 있는 조선왕릉 40기를 일일이 찾아 봉심을 행했다. 그는 이번 등재 소식에 “능에 묻힌 조선의 왕과 황제들이 일제에 빼앗겼던 조선왕조 500년의 찬란한 역사를 이 시대에 되살리라고 주신 선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를 1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 맞은편의 대동종약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왕실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그의 운명은 2005년 7월 16일 영친왕의 뒤를 이은 이구 황세손이 후사 없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바뀌었다. 의친왕의 손자로 현대홈쇼핑 본부장이었던 그가 대한제국 황실의 적통을 이은 ‘황사손(皇嗣孫)’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런 전력 때문에 강화도 산골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조선 제25대 철종이 된 이원범과 비슷하다고 해서 ‘현대판 강화도령’에 비유된다. 인터뷰 과정에서는 옛날 궁중에서 쓰이던 낯선 용어들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원 황사손이 올해 5월 3일 종묘대제를 봉행하던 중 음복을 하고 있다. 대동종약원 제공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황사손으로 기여한 것이 있나.

“지난해 말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답사팀이 현지 실사차 나왔을 때 건원릉에서 ‘친향례’를 재현했다. 당시 봉심 기간 중이었는데 중국 광둥성 교수인 답사팀장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한 왕조의 제향을 600년 이상 후손들이 그대로 봉행하고 있다는 것에 경탄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공자의 제향을 지내는 데 벤치마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선왕릉 40기는 조형미와 자연미가 조화를 이룬 데다 전통 제례의식이 함께 전해진 유·무형 통합 문화재임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조선 왕릉 40기를 다 돌아봤는데.

“옛날 왕릉 관리자는 ‘능참봉’이라고 해서 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관리를 잘못하면 엄히 문책을 당했다. 지금은 문화재청 소속의 관리소장들이 각 능을 맡고 있는데 그들의 정신 상태에 따라 능의 상태가 다르다. 문화재청이 종손들과 협력해 왕릉 관리를 했으면 좋겠다. 과거 왕릉 주변에 들어섰던 군사시설물들은 2012년까지 철거해 원상복구해야 한다.”


-황사손으로서 1년에 지내는 제사가 몇 번인가.

“황사손은 초헌관(제사 지낼 때 첫 잔을 올리는 사람)이다. 큰제사는 12번 정도 된다. 조선왕조 역대 왕들에게 올리는 종묘대제(5월), 추수감사 성격의 사직대제(9월), 전주 이씨 시조묘에서 올리는 조경단대제(4월), 건원릉 대제(6월) 등 대동종약원 주관의 4대 제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부터 환구단제(10월)가 추가됐다. 고종황제가 1897년 황제국을 선포하면서 지금의 조선호텔 자리에서 지냈던 천제를 100여 년 만에 부활시킨 것이다. 종묘대제는 90분, 왕릉제는 60분 걸린다. 이들 제사는 준비하는 데만 한 달 이상 걸린다. 제례 전날부터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다.”


-오늘날 조선 왕조의 제례가 갖는 의미는.

“제례에는 500년의 역사와 음악·미술·패션이 담겨 있다. 제사에 올리는 술만 해도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올리는 술의 제조 과정이 다르고 의미도 다르다. 왕이 행하는 제례에는 당대 최고의 문화와 가치관이 담겨 있었다. 그걸 하나하나 떼어내 의미를 부여하고 현대적 감각으로 단장하면 최고의 콘텐트로 재활용할 수 있다. 박물관 안에 박제화된 채 갇혀 있는 전통 문화를 밖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우리는 단군 이래 최고의 통치권자가 제사장을 겸했다. 큰 제례에는 당파를 초월해 모두가 참여했다. 여야 간 분쟁을 통합하는 도구이기도 했다. 지금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나.”


-어느 날 갑자기 조선 왕조의 후계자가 됐는데.

“처음엔 막막했다. 궁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분당 매출액이 얼마인지까지 경쟁하며 초고속 인생을 살다가 수백 년의 세월이 정지해 있는 궁에 갇히고 만 셈이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제례가 훌륭한 행위예술로 다가왔다. 몇 천 명씩 모여 제사를 지내는 종묘대제의 경우 저절로 몰입이 되곤 했다. 조선 왕들이 500년 동안 의식을 행하던 곳에서 같이 의식을 행한다고 생각하니 영혼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3년상을 치르면서 조선 성군들의 생애와 왕실의 법도를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조선왕릉을 알리기 위한 방안은.

“조선 왕실 테마파크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조선 왕릉과 궁들을 개방해 그곳에 살았던 왕과 왕비·왕세자·공주가 받았던 교육이 무엇인지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제례가 우상숭배라는 지적도 있다.

“종묘대제를 드리다 보니 조상신에 대한 절은 우상 숭배가 아니라 패밀리에 대한 메모리다. 돌아가셔서도 살아 있을 때처럼 돌봐 달라고 기원하는 것이다.”


-황실 복원 운동에 대한 입장은.

“내가 어딜 가면 ‘황제 폐하’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드라마에서나 있을 수 있는 얘기다. 황사손은 정치와는 상관없이 조선왕실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가는 사람일 뿐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다른 나라 왕실과 교류를 넓혀 네트워크를 쌓아나가겠다. 정치권과는 철저히 거리를 두겠다. 개인적으로 전공을 살려 고급스러운 조선왕실의 문화를 방송 프로그램으로 제작, 전 세계에 공급하는 사업을 할 계획이다. 왕실문화를 브랜드화하겠다.”

그는 왕실의 법도에 맞춰 이전의 생활습관을 많이 버렸지만 한 가지 고집하는 게 있다고 했다. 머리 모양이었다.

“종약원 어른들이 황사손다우려면 2대 8 가르마로 머리를 깎으라고 한다. 내가 나일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이 까치머리 하나뿐이라 아직 고수 하고 있다.”

 

이원 황사손

의친왕의 9남인 이충길씨의 장남. 서울 태생으로 미국 뉴욕기술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2005년 7월 19일 이구 황세손의 양자로 입적된 뒤 대한제국 황실의 정식 후계자가 됐다.

 

 

https://news.joins.com/article/3674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