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황실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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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han Imperial Household

경희궁(慶熙宮)

경희궁은 광해군 9년(1617)에 건립된 이후 10대에 걸쳐 조선의 왕들이 정사를 보았던 궁궐입니다. 5대궁궐 중 서쪽에 자리하여 서궐로 불렀는데 새문안대궐 새문동대궐 아주개대궐로도 불렸습니다. 조선의 이궁(離宮)으로 경운궁(덕수궁)과 홍교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광해군과 인목대비가 기거하셨고 숙종대왕과 순조대왕께서 태어나 승하하셨습니다.
숭정전에서는 경종대왕 정조대왕 헌종대왕이 즉위하셨습니다.

7만2천8백 평에 100여 동이 넘는 전각들이 있었으나 현재 복원된 전각은 정문인 흥화문과 정전인 숭정전 그리고 후원의 정자 황학정 세 채에 불과합니다. 일본에 의해 가장 철저히 파괴된 궁으로 정전인 숭정전은 1926년 남산 밑 동국대 안 일본계사찰 조계사로 옮겨져 법당으로 정문인 흥화문은 1932년 이등박문을 추모하는 사당(현 신라호텔)으로 옮겨져 출입
문으로 사용되는 무례한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나머지 전각들은 헐리거나 친일역적매국노들에게 헐값에 팔려버렸고 태평양전쟁 때는 지하방공호가 설치되어 경희궁의 원형이 거의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일본의 우리 궁궐파괴행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문명적이며 무자비했습니다.

<서궐도안>

더욱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해방 후 일본도 아닌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에 의해 경희궁터는 완전히 훼손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대한축구협회, 성곡미술관, 일조각출판사, 내수동교회, 구세군회관, 서울시교육청, 서울복지재단, 기상청서울관측소 모두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경희궁터 안의 못생기고 기괴스런 콘크리트건물들입니다.
1985년 임시철골구조형태의 서울역사박물관이 들어서더니 2000년대 초반부터는 경희궁의 이름을 딴 아파트 오피스텔 주상복합빌딩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물질만능배금주의적인 분양권프리미엄-임대수익창출이라는 기치 하에 경희궁의 복원은 요원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