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황실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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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han Imperial Household

덕수궁-경운궁(德壽宮-慶運宮)

<덕수궁 정관헌. 조선왕국 역대 제왕들의 어진이 봉안된 곳으로 고종광무태황제의 개혁개방정책이 가장 잘 반영된 동서양융합건축양식의 전각입니다.>

덕수궁은 서울 중구 정동(貞洞)에 있는 조선왕국과 대한제국의 궁궐이며 본래 이름은 경운궁이었습니다. 1907년 12월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고종광무태황제께서 일본의 강압으로 퇴위하신 후 경운궁에 머무르시면서 덕수궁으로 바뀌었습니다. 일본은 더 이상 고종광무태황제께서 항일독립투쟁주도와 국정에 관여하지 말고 승하하실 때까지 덕을 베풀며 장수하시라는 비꼬는 의미를 담아 고종광무태황제의 궁호(宮號)를 ‘덕수’(德壽)로 지으면서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이런 치욕의 역사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경운궁 원래의 궁호를 하루 속히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俄館播遷)이 감행됐는데 이 망명사건으로 을미사변으로 구성된 친일내각이 붕괴됐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친러내각의 구성과 함께 1897년 10월 12일 자주독립황제국인 대한제국이 공표된 궁입니다.

<1896년 건양2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공사관에서의 고종광무태황제[중앙]>

10월 11일과 12일 양일간 고종광무태황제의 즉위식이 거행되면서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정궁(正宮)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1905년 10월 21일 밤 일본의 압력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영욕의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고종광무태황제의 집무와 외국사신들의 접견을 위해 영국인 하딩(J. R. Harding)의 설계로 1909년 석조전(石造殿)이 준공되었습니다.
그러나 1919년 1월 21일 친일역적매국노들의 독살농간으로 고종광무태황제께서 함녕전에서 승하하시면서 덕수궁은 정궁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일본은 이왕가미술관(李王家美術館)을 설치했고 해방 후에는 국립박물관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됐습니다. 한국전쟁 전에는 미소공동위원회가 석조전에서 진행됐습니다.

<고종광무태황제께서 선진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건축한 덕수궁 석조전>

2017년 10월 14일 대한제국선포 120주년을 기념하여 고종광무태황제의 증손이신 황태자 이 원 전하께서 황제의 역으로 고종광무태황제즉위식 및 환구대제를 재현하셨습니다.

<2017년 10월 14일 ‘대한제국선포120주년 기념 황제즉위식’ 어가행렬. 사진출처-뉴스프리존>

<2017년 10월 14일 황제의 역으로 ‘대한제국선포120주년기념 황제즉위식’ 재현을 진행하고 계시는 황태자 전하>

<2020년 9월 21일 『헬로 황태자』 다큐 촬영 차 다니엘 튜더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