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황실문화원

황실계보

Daehan Imperial Household

의민황태자비(懿愍皇太子垠[英親王妃], 1901~1989

생애

의민황태자비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여왕(梨本宮方子女王)은 일본의 황족이자 의민황태자의 비십니다. 1901년 11월 4일 메이지왕의 조카이자 황족인 나시모토노미야 모리마사왕(梨本宮 守正)과 이쓰코왕비(伊都子)의 장녀로 도쿄에서 출생하셨습니다.

1920년 4월 28일 일본에 볼모로 계시던 의민황태자와 정략혼인하셨습니다. 1921년 장남 진(晉)을 낳았고 이듬해 한국방문 중 경성에서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1931년 둘째 구(玖)를 출산하셨습니다.

1945년 일본 패전 후 이왕가(李王家)가 폐지되어 신분이 강등됐고 재산도 몰수됐습니다. 의민황태자의 복권을 두려워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방해로 환국마저 좌절되셨습니다. 일본에서는 의민황태자가 재일한국인으로 간주됐지만 한국정부는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아 무국적자로 고된 삶을 사셨습니다. 1963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장의 도움으로 환국하시어 국적회복과 함께 창덕궁 낙선재에서 기거하시게 되셨습니다.

<1962년 10월 18일 의민황태자비와 박정희 의장>

황실사회공헌사업

의민황태자비께서는 1963년 신체장애자재활협의회 부회장 취임을 계기로 사회봉사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으셨는데 황실사회공헌사업으로 1966년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한 자행회(慈行會)를 1967년 언어장애인 및 소아마비장애인들의 사회적응을 위한 명휘원(明暉園)을 1971년 지적장애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한 자혜학교(慈惠學校)를 설립하셨습니다. 서예작품과 황실오얏꽃문양도자기 제작 그리고 해외모금활동과 칠보(七寶)를 통해 복지사업기금을 모으셨습니다.

<황실사회공헌기금 모금활동을 위해 의민황태자비께서 직접 제작하신 황실오얏꽃문양 도자기>

1973년 숙원사업이었던 영친왕기념사업회를 발족하셨고, 1982년 광명시 명혜학교(明惠學校) 이사장으로 재직하셨는데 넉넉지 않은 한국정부의 보조비로 빠듯하게 사셨지만 사회봉사활동에 열정적이셔서 ‘한국장애인들의 어머니’로 존경받으셨습니다. 일본에서는 재일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일본인으로 알려지셨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화해협력을 기원하는 뜻을 담아 영친왕비께서 그리신 조충도(草蟲圖). 일본의 개나리꽃과 한국의 국화꽃이 지구를 상징하는 둥근 타원형의 땅 위에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개나리꽃은 만개하고 국화꽃은 이제 꽃망울을 맺혔습니다. 꽃망울을 맺은 국화는 가을을 맞이합니다. 별 두 마리가 만개한 개나리꽃을 향해 날아갑니다. 60-70년대 경제부흥을 이룩했던 일본과
이제 경제성장의 꽃을 피우는 한국이 잘 어울려 살아보자는 뜻을 담았습니다.>

<1981년 낙선재. 의민황태자비께서는 환국 후 평생 장애인과 소외계층을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2006년 11월 일본 후지TV에서 의민황태자 부부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무지개를 이은 왕비’(虹を架ける王妃)가, 1990년 탤런트 이휘향이 의민황태자비 역으로 출연한 드라마 ‘왕조의 세월’이 KBS에서 방영됐습니다. 2007년 의민황태자비의 황실사회공헌사업과 관련된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가 탤런트 김희애를 주연으로 기획 됐으나 독도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이 빚어져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훙서

1989년 4월 30일 창덕궁 낙선재에서 숙환으로 훙서하셨습니다. 장례는 5월 8일 국민장으로 치러졌고 경기도 남양주 금곡동 홍유릉 영원(英園)에 의민황태자와 합장되셨습니다. 세례명은 마리아시며 생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과 무궁화장에 추서되셨고, 서울특별시문화상, 적십자박애장 금장, 5·16민족상, 소파상 등을 수상하셨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한사대학교(현 대구대학교)에서 명예사회과학박사를 수여받으셨습니다. 저서로는 『지나온 세월』, 『The World is One』, 『세월이여 왕조여』가 있습니다.

<1989년 5월 8일 의민황태자비 장례식. 종로3가네거리>

올바른 호칭

의민황태자비께서는 영친왕비 또는 영왕비로도 호칭되셨습니다. 자행회와 자혜학교 그리고 명휘원의 설립자 및 소유주로 이방자라는 성명이 표기되면서 일반인들에게는 이방자 여사 호칭이 더 친숙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공식 황실묘호가 원(황태자와 황태자비의 묘소 명)이고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올린 사시(私諡)가 현덕정목온정자행비(顯德貞穆溫靖慈行妃)여서 이방자여사로 불리는 호칭은 잘못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