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황실문화원

황실계보

Daehan Imperial Household

회은황태손비(Julia Mullock, 1928~2017)

회은황태손비의 본명은 줄리어 멀록(Julia Mullock)이며 한국명은 이주아(李珠亞)십니다. 부친은 우크라이나 출신 탄광노동이민자로 1930년 사망했습니다. 이후 모친께서 뉴욕 브루클린 출신 남성과 재혼해 회은황태손비도 함께 뉴욕으로 이주하셨습니다.

1944년 해군복무 후 프랭클린전문미술학교(Franklin School of Professional Art)에 입학해 미술과 건축인테리어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1955년 아이엠페이건축회사에 취직했는데 미술공부를 위해 스페인 유학준비를 하던 중 회은황태손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황태손비 줄리아는 스페인 유학을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증언하셨습니다: “그는 청혼하지 않았어요. 일방적으로 선언했지요. ‘우리 결혼할 거야.’ 그게 전부였죠, ‘나와 결혼해 주겠소’가 아니었어요. 미국식으로 무릎을 꿇고 청혼하거나 제 부모님께 달려와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찾아간 것도 아니었어요.”

<1958년 뉴욕 세인트조지교회에서의 결혼식>

1957년 12월 방미 중이신 영친왕과 영친왕비께 “꼭 봐주실 사람이 있는데, 만나 주시겠어요?”라며 줄리아를 집으로 데려와 소개했다 합니다. 1958년 5월 약혼 후 10월 25일 회은황태손과 뉴욕 세인트조지교회에서 혼인하셨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회은황태손께서는 한국황족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고 브루클린에서 평범한 신혼살림을 차리셨다 합니다.

<1963년 한국입국 당시의 모습>

<70년대 낙선재에서의 행복하셨던 모습들>

<왼쪽부터 회은황태손, 순정효황후, 의민황태자비, 줄리아 회은황태손비>

황태손비 줄리아는 황태손의 부임지였던 하와이에 머물다 1963년 한국국적 회복으로 창덕궁 낙선재에서 시어머니 영친왕비의 황실복지사업을 도우셨습니다. 1979년 한국에서의 사업 실패로 일본으로 떠난 황태손과 사이가 악화됐고 후사가 없다고 불평하는 종친들과 심한 갈등을 겪으셨습니다. 이것이 이혼사유가 되어 1982년 황태손과 강제로 이혼하셨습니다. 이후 플라자호텔에서 공예점을 운영하시며 장애인복지사업에 힘쓰셨습니다.

<시아버지이신 의민황태자[영친왕]훙서 1주기에 참석하신 회은황태손비[좌]>

<1982년 5월 영친왕비[좌]와 황태손비 줄리아[우]께서 장애청소년이 만든 수공예품바자회를 여시는 모습.
이혼 후에도 영친왕비와 친분을 이어가시며 장애인복지사업에 매진하셨습니다.>

<창덕궁 낙선재에서의 주한외교관부인 초청 장애청소년돕기바자회>

<회은황태손께서는 2004년 5월2일 종묘대제를 생전 마지막으로 주관하셨습니다. 이때 전남편 회은황태손 저하를 보기
위해 회은황태손비께서는 종묘를 방문하셨습니다. 이 때 해원왕녀를 만나 부축을 받으셨지만 진행요원은 두 분에게 의자를 내주지 않았다 합니다.
두 개의 의자를 간신히 얻어 앉아 행사를 주관하시는 회은황태손을 지켜보실 수 있으셨다 합니다. 매년 거행되는 종묘대제는
강제로 이혼당한 회은황태손비께서 그리운 회은황태손 저하를 멀찍이서 나마 목도하실수 있었던 인연의 끈이었습니다.>

1995년 하와이로 떠나셨습니다. 2005년 4월 자신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제작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셨는데 이때 회은황태손의 훙서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이혼사유로 영결식에 초대받지 못하셨습니다.

황태자비 줄리아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멀찍이서 남몰래 전남편이었던 회은황태손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셨습니다. 이는 당시 회은황태손 장례식관련 기사에서 많이 다루었습니다.

<훙서하시기 전 생전의 모습[좌]. 줄리아 황태손비께서는 항상 회은황태손 저하를 그리워하셨습니다.
종친들의 강요로 이혼 당하셨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사랑 쿠[Koo]를 죽기 전 단 한번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다”라고 여러 차례 밝히셨습니다
[Cf. “묘소 찾아 ‘쿠’와 인사 나눠...10월께 귀국,” 조선일보 2005-08-07]. 2005년 8월7일 회은황태손 장례식 후 하와이로 귀국하시기 전 인천공항에서의 모습. 사진출처-조선일보>

회은황태손비 줄리아는 2017년 11월 26일 미국 하와이 할레나니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훙서하셨습니다. 향년 94세로 임종은 낙선재에 거주하던 시절 입양한 양녀 이은숙(李恩淑, Eugenia Unsuk, 1959~)이 지켰습니다.

<2017년 11월26일 하와이 할레나니요양원에서 훙서하시기 전 해원왕녀와 함께. 해원왕녀는 3년 뒤 2020년 2월8일 101세로 훙서하셨습니다.>